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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리뷰] 르세라핌 미니 3집 <EASY> (24.02.19.)
    앨범 리뷰 2024. 3. 3. 21:30

    데뷔 앨범 <Fearless>부터 쉼 없이 달려가던 르세라핌은 쉼표 <Perfect Night>를 거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서사를 마련한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세상의 편견에도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시련이 닥쳐와도 오히려 단단해지며, 누군가에게 용서를 바란 적도 없었다고 말하던 당당한 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그 너머에 감춰져 있었던 연약한 내면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떨어져서 마주하는 만큼 르세라핌의 새 앨범은 서사만큼이나 새로운 구성으로 리스너들을 맞이한다. 인트로 <Good Bones>는 타이틀과 다른 곡 분위기로 곡을 이끌고 재생시간도 타이틀 못지않다는 점에서 타이틀에 종속되어 서곡 역할에 충실하던 데뷔 초창기의 인트로<The World Is My Oyster>나 <The Hydra>와 다르게 느껴진다. 타이틀이 아닌 앨범의 막을 여는 트랙으로서의 역할로 바뀐 것인데, 여기에 흥을 돋우는 하드록 스타일의 기타 리프가 더해져 곡의 자립도를 높였다.

     

    이어서 트랩 비트에 기반한 새 타이틀 <EASY>도 전작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분위기를 하강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꽤 신선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이며 당당하던 모습 너머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만큼 화법에 있어서도 그동안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방향을 비튼 느낌이다.

    타이틀 이후의 수록곡들도 자신의 역할에 꽤 충실하다. 전작 <Unforgiven>만 하더라도 금기를 깬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담고자 했지만 그 메시지가 잘 와닿지 않았었다. 여기에는 동명의 타이틀이 지지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외에도 이어지는 수록곡들이 개별적인 퀄리티와 별개로 앨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앨범의 수록곡 <Swan Song>과 <Smart>는 타이틀의 역할을 분담하여 그 메시지를 꽤 효과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전작과 마찬가지로 타이틀 못지않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Swan Song>은 타이틀과 비슷한 분위기로 앨범의 연계를 도모하고 아프로비츠가 연상되는 <Smart>는 타이틀에서 부족했던 이어웜 요소를 부각시켜 앨범의 에너지를 균일하게 이끌어냈다. 여기에 팬송인 <We got so much> 역시 앨범의 전체적인 기조를 따르면서 감정의 과잉 없이 제법 깔끔하게 매듭지었다.

    다만 이 앨범에도 아쉬운 점이 다소 느껴진다. 먼저 팀의 시그니처처럼 자리잡은 인트로의 내레이션은 여전히 양날의 검과 같은 호불호 요소로 남아있다. 데뷔 앨범부터 계속 이어져 어느덧 팀의 정체성처럼 자리 잡은 데다가 앨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어 효율적이지만 리스너뿐만 아니라 일부 팬들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만큼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타이틀의 새로운 화법 역시 이번 앨범의 호불호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 그동안 르세라핌의 활동곡은 모두 곡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ANTIFRAGILE>의 '걸어봐 위엄 like a lion 눈빛엔 거대한 desire' <UNFORGIVEN>의 'U-unforgiven-given-given 내 style로 livin' livin' livin' 내 방식 아주 원 없이 또 한국말론 아주 “철없이”, What?'처럼 곡의 메시지를 응축한 가사가 포인트로 자리 잡았는데, <EASY>는 곡을 진행하면서 강세가 있어야 할 부분을 크게 드러내지 않다 보니 끌어당기는 맛이 부족해 보인다.

    이 밖에도 전개상 크게 거슬리지는 않지만 <Smart>의 '아귀가 착착 맞게', '갓생, 난 준비를 끝냈어'처럼 일반적으로 노랫말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나 신조어를 가사로 담는 것도 듣는 이에 따라서 옥에 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듯하다.

     

    결국 르세라핌으로서는 나름의 모험이다. 전작 <ANTIFRAGILE>이나 <UNFORGIVEN>처럼 흥이 느껴지는 곡으로 활동하던 팀이 단번에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르세라핌은 '쉽지 않음 내가 쉽게 easy', 'Yuh know that I make it look easy'라는 <EASY>의 노래 가사 그대로 높은 완성도를 갖추어진 앨범으로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음원 강자들과 바로 맞닥뜨리는 만큼 좋지 않은 시기에 하는 도전임에도 한편으로는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스타일임에도 다른 이들과 당당하게 경쟁이 가능할 만큼 좋은 뼈대를 갖추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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